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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보호조약 체결 당시 순절한 한말 최대의 충신이오 애국자이신 민충정공의 휘는 영환이오 자는 문약이오 호는 계정이라 한다. 본은 려흥이며 선혜당상 겸호의 장남으로 철종12년 7월 15일 서울 전동에서 탄생하여 백부 태호에게 입후하였다. 공은 흥선대원군의 처질로서 고종황제의 외종제에 해당하고 명성황후의 종질도 되니 실로 황실의 지친으로 혁혁한 가문에서 생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품이 온순하고 효행이 지극하며 재질이 탁월하여 17세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예문관 검열시강원설서 홍문관부제학 승정원 도승지 이조판서 등 요직을 역임하고 건양원년에 특명전권공사가 되어 로국황제 니코라이2세의 대관식에 참례하고 이듬해 영독로불이 제국의 특명전권공사가 되어 구미 각국을 순방하고 겸하여 특명전권대사가 되어 영국 빅토리아여왕 즉위 60년 축하식에 참례하고 돌아와 군부대신과 의정부 참정을 역임하였다. 그동안 국운이 불행하여 와세의 침략이 심하고 내정이 극도로 부패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큰 정변이 여러번 일어나고 임오군란에 생부의 참화를 당하고 을미사변에 명성황후의 참변을 보게 되어 공의 가정적 불행도 적지 아니하였다. 공은 기울어저 가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러번 눈물로써 고종의 실정을 속하고 구미제국을 친찰한 후 정치제도의 개혁을 건의하고 광무2년에 독립협회가 일어나 외세를 배척하고 자주독립과 민권확장을 주장할때 적극적으로 이를 원조하였으나 간신들의 방해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후 다시 각부대신을 역임하고 로일전쟁때 배일태도를 취하여 시종무관장의 한직으로 전임하였다. 로일전쟁이 끝난 뒤 일제의 원흉 이등박문이 외부대신 박제순 등 5적을 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