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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향교(龍仁鄕校)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88호 향교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마다 유학을 교육하고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각 고을의 중심지에는 관아, 사직단*, 향교를 설치하여 고을의 기본 틀을 만들고 질서를 바로잡았다. 용인향교는 용인현의 중심지인 구성에 건립되었다. 법화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위치하고 내삼문을 두어 신성한 곳으로 구분하였다. 그 아래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는 부속 건물인 충효교육관, 용서재, 외삼문을 두었고, 입구에 향교의 영역을 나타내는 홍살문을 설치하였다. 용인향교는 조선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초 설립 후 3차례 옮겨 지었다. 본래 용인현의 동쪽 2리(‘하마비마을', 구 경찰대 후문 인근)에 위치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조선 인조 19년1641에 현의 북쪽 1리('구교동’)로 옮겨 지었고 숙종 12년1686에 원래의 터인 현의 동쪽 2리로 다시 옮겨지었다.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잦은 이건에도 대성전은 17세기 경기도 향교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용인향교는 한국전쟁 시 대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소실됨에 따라 1963년 명륜당을 중건하면서 현재까지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용인향교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25분의 유교 성현에게 석전대제라는 제례를 지낸다. 조선 시대 용인향교는 유학 보급과 과거 급제를 위한 유교 경전 교육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서는 근대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명륜학교가 설치되어 잠시 운영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곧 단절되었고, 1980년대부터 충효 교육과 전통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 사직단: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해 쌓은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