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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곡마산을 지나 마을 앞길인 이곳을 지나실때 유념하셨던 듯 숙종 중엽에 노쇄로 중책에 임하기 어려움을 드러 충임고사를 수십차 상소하실 새 퇴관 후라도 도성 근처에 유할 것을 숙종이 원함으로 이곳을 낙향 은거지로 하시려 공 61세시 을사 2월에 이주하셨다.기후 영상재임 3임 등의 출사가 계셨음으로 칙사 등 승지 별감들의 왕래 빈번 등 창일로 일파담이릉곡이라는 속어가 있었다. 그러나 공께서는 청렴강직 특히 일상생활에 검소하셨고 ○십간의 저택과 일각의 정자 건물로 만족수범하셨으며 재상으로서 이곳에서는 채전을 가꾸시는 등 농사에 친접하셨고 동창이 밝았느냐의 유명한 시조는 이곳에서의 유작이시다. 당시 맑고 깊은 시내와 우거진 거목숲은 1925년 을축 대홍수로 유실 황폐 비파담수 심천척 경면무풍화주 청강일곡 포촌유장하강촌사사유 노처획지위기궁 .. 시구가 무색케 되었다. 옛 파담남씨의 번영은 공 현손 휘 직화택 시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