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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서울의 2차 시위는 여학생들이 주도하였다구요? 광주를 넘어 전국·해외로의 확산 29 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당황 한 총독부는 신간회·청년총동맹 등 사회단 체 간부들을 대규모로 구속하고 12월 13일 부터 조기방학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항일 투쟁은 전혀 식지 않 았습니다. 1930년 1월 초순, 휴교했던 학 교들이 다시 개교하자 제2차 시위를 전개 합니다. 제2차 시위 관련 신문기사 “15일 대검거 이후에도 만세소리 그치지 않는다” 서울에서의 제2차 시위는 제1차 시위 당시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근우회 등 여성 단체와 이화여고보 등 여학생들이 중심이 됩니다. 이는 제1차 시위를 주도했던 남학 생과 신간회 등 사회·청년단체의 상당수가 검거되면서 활동이 크게 위축된 반면, 여 학생과 여성단체들의 역량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1월 9일, 이화여고보 최복순은 근우회의 허정숙을 만나 제2차 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한 뒤 숙명여고보·배화여고보·정신여학교 등에 참여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1 월 14일, 경성여자상업학교 송계월의 집에서 휘문고보·숙명여고보·동덕여고보 등 남녀학교 대표 16명이 모여 1월 15일로 거사를 결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