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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운명의 시간 오전 9시, 첫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광주고보생들은 “교우들이 구속되어 철창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느냐. 나가서 시위 하자”고 외치며 창고에 있는 농기구와 운동기구를 들고 일제히 교문을 나와 시내로 진출합니다. 같은 시간 광주농업학교 학생들도 “철창에서 신음하는 교우를 구하자” 라는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300여 명의 광주고보생들의 목적지는 11월 3일 대시위로 학우들이 구속되어 있 는 광주형무소(지금의 동명동에 위치)였습니다. 광주고보생들은 충장로의 우체국과 궁동을 거쳐 형무소를 향했습니다. 광주여고보에 이르러 시위 합류를 촉구합니다. 여고보생들이 교실을 뛰쳐나와 교문을 향했지만 경찰과 교직원의 방해로 합류하지 못하고, 구호를 외치며 동조합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동맹휴학으로 맞섰습니다. 광주고보와 농업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학우들이 구속되어 있는 광주 형무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11월 3일 대시위 이후 학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인근 지역의 경찰력까지 동원하였습니다. 시위대는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트럭까지 동원한 경찰의 무력에 밀 려 강제 해산을 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