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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신사 참배를 거부한 한 무리의 광주고보생들은 광주일보사(현 전일빌딩 근처)로 몰 려갑니다.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광주일보는 일제 기관지였습니다. 10월 30일 나 주역에서의 한·일 학생 간 충돌 사건도 한국 학생들이 잘못했다고 일방적으로 비난 하는 등 편파보도를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기사의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지만 거부 당하자 윤전기에 모래를 뿌려 광주일보를 응징합니다. 친일 편파 언론사 광주일보를 응징할 무렵, 신사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이토 등 광주중학교 학생들이 신사 앞 광주천변에서 광주고보 최쌍현에게 시비를 걸어 단 도로 얼굴을 찌르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철물점에 단도 가 동이 날 정도로 일본인 학생들이 칼을 사 갔으며 그 칼로 한국인 학생들을 해치려 한다는 풍문이 나돌았는데, 사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일본인 학생이 광주고보 학생을 단도로 찔렀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갑니다. 오전 11시경, 최쌍현을 찔렀던 일본인 학생들과 광주고보 학생들이 충장로 5가에 위치한 수기옥정 우편국 앞에서 부딪쳐 시비가 벌어져 광주고보생들이 사이토 등을 구타합니다. 수세에 몰린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역(현 동부소방서) 쪽으로 도주하자, 광주고보생들은 이들을 추격합니다. 11월 3일 첫 충돌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1월 3일, 그 날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