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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1920년대는 실력양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대학을 설립하자는 민립대학설립운동, 국산품을 애용하자고 주장했던 물산장려운 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김기권은 광주고보 3학년 때인 1928년 이경채 사건으로 시작되었던 대맹휴 투 쟁의 주모자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출옥 후 김기권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1929년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장재성 또한 1929년 6월에 귀국해서 각 학교 독서회를 조직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각 학교별 독서회 결성을 끝낸 장재성은 8월 중순 몇몇 친구들과 함께 김기권 집으 로 찾아갑니다. 장재성은 이 자리에서 김기권에게 문방구점을 권유합니다. 아울러 독서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학생소비조합 구성 계획을 밝힙니다. 장재성이 돌아간 뒤 김기권은 아버지에게 문방구점을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하 지만 친구들과 소비조합을 만든다면 아버지가 반대할 것 같아 장사를 하겠다고 거짓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논을 팔아 500원을 마련해 줍니다. 그 돈으로 당시 광주지 방법원 건너편(현 금남로 공원)에 점포를 얻어 문방구점을 차립니다. 장재성을 비롯한 독서회중앙부는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소비조합을 만들기 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김기권에게 학생소비조합 형태의 문방구점을 권했던 것입 니다. 문방구점을 열기 위해 회원들로부터 1인당 3원씩 300원을 모으고 김기권이 500원, 나승규가 100원을 출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주고보에서 60원, 김기권이 500원을 출자하여 1929년 9월 초순 문방구점을 열었습니다. 이렇 게 ‘김기권 문방구점’이라는 간판을 단 소비조합이 설립됩니다. 운영은 물론 김기권 이 담당합니다. 문방구점은 독서회 회원들의 모임 및 토론 장소였습니다. 김기권 문방구점과 장재성 빵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11·3 학생독립운동을 이끈 학생 조직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