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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송이 곤도를 구타합니다. 김보섭은 화난 얼굴로 이들을 제지하고, 곤도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에 사과할 것을 종용합니다. 그 후 오쾌일은 다시 곤도에게 타이르듯이 조 선인을 야만인이라고 놀린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곤도는 결국 잘못을 사과 합니다.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옆구리와 뺨을 맞은 곤도는 불만을 품고 단장 후지사와에게 보고합니다. 후 지사와의 아버지는 나주경찰서장이었습니다. 나주경찰서장은 바로 통학열차에 형 사들을 동승시켜 학생들을 감시토록 하였습니다. 이를 눈치 챈 고보생들은 후지사 와를 응징하고자 했지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운암역 사건은 단순한 감정적 싸움인 것 같지만 그 밑에는 민족적 감정이 응어리져 있었습니다. 대맹휴투쟁 1주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으로 이 어지는 디딤돌이 됩니다. 나주-광주 간 통학열차에서 일어난 ‘운암역 사건’은 무엇인가요? 11·3 학생독립운동의 배경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