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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0문 40답으로 알아보는 11·3 학생독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민족 차별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11·3 학생독립운동의 배경 03 1911년 8월 1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제1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하였습 니다. 교육령의 내용은 일본어 보급, ‘충량한 국민’ 육성, 노동력 착취를 위한 실업교육 장 려, 우민화교육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학교 명칭은 일본인은 소학교와 중학교, 한국 인은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로 구분하였습니다. 수업 연한 역시 보통학교는 6년 (혹은 5년)에서 4년으로, 고등보통학교는 4년, 여자고등보통학교는 3년으로 축소되 었습니다. 3·1운동이 전국을 휩쓴 이후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소위 ‘문화통치’로 전환합니다. 교사가 제복에 칼을 차고 수업하는 것과 조선인에게만 실시하던 태형도 없앱니다. 그리고 1922년 신교육령을 발표하여 수업 연한을 일본과 동일하게 고쳤습니다. 보 통학교는 4년에서 6년(지역에 따라 5, 4년)으로, 고등보통학교는 4년에서 5년으로, 여자고등보통학교는 3년에서 4년(또는 5년)확대하는 등 유화정책을 추진합니다. 하 지만 실제로는 국어(일본어) 교육을 강화하고, 일본 역사 시간을 늘리고, 우리 역사 는 축소하고 왜곡해서 가르쳐 충성스러운 황국신민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보 국어의 경우 ‘일본어급한문(日本語及漢文)’은 주당 32시간으로 배정되었 으나, ‘조선어급한문(朝鮮語及漢文)’은 주당 12시간에 불과하였습니다. 조선어급한 문 교과서도 조선어는 총 62개 단원에서 8개 단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한문이었 습니다. 역사의 경우 6년제 보통학교 교과 과정에는 역사(일본역사)와 지리교과가 신설되 었습니다. 고등보통학교에서는 한국의 역사 및 지리는 교과서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일본사를 가르치는 ‘역사지리’가 매 학년당 주당 3시간씩 배정되었습니다. 한국사는 일본사와 관련된 부분에 한하여 부수적으로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 내용도 ‘임나일 본부’, ‘신공황후의 신라침공’ 등 식민사관을 강조하여, 한국 학생들은 조작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