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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서울에서 피고도독립 시위운동에참가했는가. 답 참가하지않았다 문 서울에서 독립신문이나 독립선언서를 보았는가. 답본일이없다 문 서울에서 독립 시위 운동을 시작힌 당시에 피고가 시는 마을에서 서울에 가 있던 사람은 없는가 답 있다- 이덕순, 최두환, 남경우등 3인이 나와함께서울을떠났다 문 서울에서독립시위운동을히는것을보고와서는피고의미을에서도그운동을할상의를했는가 답 그렇다. 문 누가수모자가되어 언제 그상의를했는가. 답 금년 3월 28일 정오경에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이시연 집에서 이덕순이 우리 마을에서도 독립딴 세를 부르자고 말을 꺼내고 그 지리에 있던 사람에게 권유하여 친동을 얻었디는 것이다. 그래서 미을 사람 일동에게 전달하고 칠곡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독림만세 를 불렀다 그런데 그 날은 면장이 제지해서 일동은 돌이왔다-. 그 디음 날인 29일에는 칠곡리의 홍모, 이모가 그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원곡면사무소로 몰려와서 만세를 불렀으므로, 우리 u}- 을과기타각미을의 인민이 참가하여 독립만세를불렀다‘ 문 4월 1일에 면사무소나 순사 주재소로 몰려가자는 상의는 언제 했는가 답 3월 30일, 31일의 양일에도 각 미을 사람들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계속 불렀다. 3월 1일 해산 할 때에 전술한 칠곡리의 홍모 이모 양인이 군중에 대하여 내일도 다 모이라고 했다. 그래서 4 월 1일에도 각 미을 사란들이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연호했디 . 그 때에 전술한 홍 모와 이모가 띤장을 꿀어내어 선두에 세우고 양성으로 가자고 해서 일동은 양성으로 출발했다. 그 도중에 이덕순이 양성 못 미쳐 골짜기에서 순사주재소나 면사무소를 따괴하자고 하니 일동이 찬성하여 몽둥이나 돌을 준비하여 양성으로 갔었다. 문 원곡면사무소에서는 면장괴- 면서기를 결박했는가 답 그런 일은하지 않았다. 문 그 띤시-무소를 출발한 것은 몇 시경이었는가. 답 시간은 알 수 없으나 저녁을 먹고 조금 있다가 어두운 다음이었다 492 VI. 활용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