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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식선생판결문 (국가기록원) 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10년 대한 제국이 일제가 합병되자 만주로 망명하 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8월 김 규식 선생은 대힌군정부(太랩軍政府)의 중 심인물로 활동하고, 동년 12월 북로군정 서(」t~(f1:[(政껴)가 조직되자 사단장으로 활 동하였다. 이와 별도로 사관연성소( I:'다 練成所) 교관으로 복무하는 등 청년교육에 도 앞장섰다, 1920년에는 김좌진(金K鎭. 1889∼1930) 장군 등과 함께 청산리에서 일 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1921년 지유시침-변으로 인해 독립군이 분산되자 망명군을재편성하고, 1923년 이범석(섣폐奭. 1900∼1972) 선생 등과함께 고려혁명군을조직 하여 훈련을 강화하는 등 독립군 활동을 지속했다. 1925년에는 신민부, 1926년에는 고려혁 명당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김규식 선생은 1931년 3월 공산당원에게 피 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김규식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추서하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분인 김규식 선생이 태어난 생가 터는『 국 외에서의 용의조선인명 부」에본적이 %류군구리면사노리 281번지로기록되어 있어 그위치를피악할수있다. 선생의 생가 터는 동구릉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 행정구역 상사노동 281번지 일원 으로, 자연지명으로는 안말에 해당한다. 주변으로 교통이 매우 발달해 있는데, 서쪽에는 남북 방향으로 서울외곽순환도로가 있고 동쪽으로는 남북 방향으로 43번 국도(동구릉로)가 개설되어 있다. 생가티는그사이에 위치해 있다. 952 Ill .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