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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혔고, 442명을 검거히여 갖은 고문을 가한 잔혹성이 국제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키자 일제는 그 책임자들에게 견책, 중근신 등으로 눈가림식의 처분을 내리고 마무리 지었다. ( [_-))파주지역 :) · 1운동 파주에서는 3월 10일 와석띤의 교히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구세군 교인인 임명애(林明잦)가 주도히는 가운데 100여 명의 학생들이 독립만세를부르며 최초의 만세시위를 하였다. 3월 26일 임진면 문산리에서 5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여 이기남이 피격되어 사망했다. 주내 면에서는 이날 파주리와 인근 주민 500여 명이 곤봉으로 무장하고 시위행진을 하였다. 일제 헌 병이 주도지를 체포하려 하자 헌병에게 티격을 가하여 저지시켰다. 이날 밤에는 청석면내 높은 봉우리들에 일제히 봉화가오르며 독립만세 소리가히늘을진동시켰다. 3월 27일에도 청석면 심학산에 약 300여명이 산상써l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산에서 내려와 면 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후 교하 주재소로 향했다. 도중에 헌병들의 발포로 해산했다. 밤이 되자다시 봉회를올리고만세시위를계속히-였다. 3월 10일 교하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임명애와 염규호따註헤) 부부는 3월 25일 “오는 28일 윤환산으로 집합하라. 불응하면 방화할 것이다는 내용의 문서 60매를 인쇄하여 외석면 구 당리, 당하리 등지에 배포하였다 그러나 시위는 이보다 하루 앞당긴 3월 27일에 일어났다. 이 날 700여 명의 동리민을 모아 면사무소와 교하헌병주재소로 행진했다. 시위대는 1,500여명으 로 불어났다. 주재소 헌병의 발포로 당히-리 최홍주(꺼깐찌까)가 시망했다. 이날 광탄면에서도 빌랑 리 주민들을중심으로수백 명이 집결히여 독립만세를외치며 신산리 면사무소로행진했다. 3월 28일 광탄면 신산리 심상각·(1차태%)과 김웅권(셈때’), 권중환{階파찌, 심의봉{沈l’u씨 등 19 인은 광턴-띤에 본부를 두고 주도면밀한 시위계획을 수립하여 2,000여 명의 군중을 집결시켰다. 이들은광틴-면사무소 '?J.써l 집결하여 조리면 봉일천 시장으로행진하여 시조에 모인 1,000여명 과 협세하여 조리면사무소 건물과 집기 일부를 파손하고 면장과 면서기를 붙들어 봉일천 시장 까지 앞장세웠다. 이들은 봉일천 헌병주제소로 밀고 나아가자 주재소 헌병들이 발포하여 광탄 면의 박원선등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수십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많은사람들이 체포되 었다. 3. 경기도 3 · 1운동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