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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 선샘의 사실 「아보의 본분과 잭임」 (1920년 4월 1 일 동아일보 기사) 감부에 의해 대한지-강회(人따디패썩)가 해산 당하지- 11 월, 이를 계승한 대한협회(太꽤꺼샘)를 조직하였다. 1910 년 한일강제합병 후에도 유근 선생은 경제와 문화 분야 에 관심을 두어 독립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였다 . 1911 년 조선광문회(때|빡光)(_짝)에 가입하여 r동국통감 」 등 국 학 관계 고문헌의 출핀사업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1915 년에는 조선산직장려계(띠빡젠織꽃뼈탬를 조직하여 민족 자본 확보에 노력히-고, 1919년 국민대회에 13도 대표 중 한 명으로 초썩하여 임시정부 격인 한성정부에서 활동하 였다. 1920년에는 이상재(싼商ι. 1850∼1927) 선생과 함께 조선교육회(뼈짜겠ff짝)를 조직하고, 동아일보 편집고문 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 이와 같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유근 선생은 1921년 5월 20일 숙환으로 자택에서 순국 하였다. 대힌민국 정부는 1962년 유근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추서하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황성신문(모城체!퍼)을 발행한 언론인이자 한성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 13도 대표 등으 로 활동한 유근 (쩨댄. L861∼1921) 선생의 묘는 용인시 처인구 남동의 용인중앙공원에 위치 해있다 · 용인중앙공원은 김량장동 남쪽에 샌 노구몽)으로 정상에는 필각정이 설치되어 있고, 7∼ 8부 능선에는 현충탑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유근 선생의 묘소는 현충탑 인근의 산 중턱에 위치해있다. 태성고등학교 남쪽으로 개설되어 있는 도로 (백옥대로J0-1:3번길)를 띠라 현충탑으로 약 560m 가량 오르면 ‘유근 선생 추모비’가 길옆에 서 있고 바로 뒤로 방향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긴에서 벗어나숲길을 따라 약 50111가량 들어가면 유곤 선생 묘소에 도착하게 된다. 888 Ill.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