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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갔다. 군중은 계속 불어나 7, 8백 명 명이 되었다. 군중은 일제히 길비-닥의 돌을 주워서 주재 소를 향하여 투석하였다. 시위대의 일부는 우편소로 딜려가 남포등과 전화기를 쳐부순 디음 유 리창과우편소 기물들을 부수었다. 우편소장과 직원들은 모두 책상 아래 숨었다가 뒷펀 밭으로 달아났다. 시위 군중은 인근에 사는 일본인 신길정치랑t信곰定셈I‘) 송원구길(κl찌뼈,'i), 야촌승태링t멧f村 將샤l‘)‘ 님-신정태랑\1f,j信l많J.\J'!IS. 월야시태링(fl野失太f!I”’ 지전화길(파IU和쉰), 우야상송(템셈암, 동 형원십링(짜l딩原 |페) 등 집을 향해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쳐서 이들 주택의 유리창, 판지문을 때려부수어벼렸다. 3월 31일 오산, 발안장, 고천, 병점, 군포징L에서 시위가 잇달있는데, 오산에서는 수 불명의 시 위가있었다. 다.송산면 송신-띤 시-강리의 홍면(싸王상 딩시36세, 농업) 등은 3월 9일경 〈매일신보〉를 통해 국내 각지에서 독립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3월 26일 사강리 구징- 홍명선w값펴) 집에 계원 120 명이 모였을 때 홍교선(싸겠싹)이 “조선 각치에서조선독립 시위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독립 운동을 하자!”하여 송산면 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2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면시­ 무소 앞마댐l 띤장과 면서기들을끌어내어 만세를 부르게 했다. 이틀 후인 3월 28일은 시-강리 장날이었다. 오후 2시경 홍면(일명 홍띤옥)과 홍효선· 이규선이 주도히-여 사강시죠에 있던사람700명이 송산면사무소뒷산에 집결히여 대힌국독립만세를 외 쳤다. 이때 수원경찰서 노구치(페미따프) 순사부장과 님양주재소 승내(1/-內) 순샤 순사보 조종환 (꾀젠↑1i) . 김학응{싸덴띤)가 시위군중에게 권총을 뽑아 들고 위협하며 홍면 홍효선 -예종리를 체 포히-였다. 홍면이 체포된 기운데서도 권총으로 위협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일정을 보고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일경에게 항의했다. 노구치 순사부조L가 홍면을 향해 권총으로 오 른쪽어께를 쏘아 쓰러뜨렸다. 총소리에 놀라 군중이 잠시 후퇴했다가 누군가 “저놈 순사를 잡 아 죽여라!”고 외쳤다. 이들이 자전거를 집어티고 님양을 헝해 딜아나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이 드을 뒤쫓아노구치를 끌어내려 돌과몽둥이로 처단하였다. 3. 경기도 3 · 1운동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