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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에게대접했다. 3월 31일 님면 주민들은 인근의 수원군 의왕면 주민들과 협세하여 2.000명이 군포징어 l 집결 하여 독립만세를부르고주 재소등을습격히였다 . 일제 경찰이 발포하여 시위대를해산 시켰다. 4월 4일 군자면에서는 3월 29일 민세시위가 있은 뒤 그날 다시 거모리 면사무소외- 경찰관 주 재소부근에 수백명의 주민들이 집결하였다. 승률리 이민들도모인 가운데 총소리가들리는속 에서도 군자면 원곡리 사는 강은식(당시 %세)는 태극기를흔 들며 군중을 이꿀었다. 4월 6일 군자띤 장현리 사는 20세 청년 권희는 시위운동을 일으키기 위히여「〈비밀통고(%‘짧 꾀따)」라는 제목으로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로 받은 10년간의 학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힌다. 우리들은 이 기쁨에 대하여 조선독립 만세를 같이 부르려고 한다. 각 이민은 태극기 1개 씩을 휴대하 고서 와서 모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여 회람시키다가 경찰에 구금되는 일도 있었다. 장곡리 구장 이덕증 (쉬)밸 'fl은 이를 보고 월꽂리 구징 F에게 전딜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이를 탐지하고주모지들이 체포되었다. (10)부천지역 5· l운동 부천군의 만세시위는 3월 24일부터 3월 28일 시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 특히 3월 24일 계 양면 시위에서는 계양면 오류리 농민 심혁성싸械,減‘ 당시 ~2"11)이 계양띤 장기리 시정에서 태극 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도히-였다. 이에 300여 명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오후 3시경 장기 리 시장을 순찰 중이던 부내(좁I시)경찰관주재소 근무하는 순시- 이궁희삼채 파 ;f }‘4 ~ A:) 이외 순사 3명이 심혁성을 체포하여 꿀고 가자 군중들이 따라가며 심혁성 석방을 요구 하였다 . 그러나 순시들은 이를 듣지 않지- 군중이 순시들을 에워싸고 “심혁성을 내 놓이하!”고 함성을 높이며, 순사 몰래 심혁성의 포승을 풀었다 . 이에 순사들은 칼을 들어 이은선(쉐t꾀을 찔러 죽였다. 군중들은 불의의 사태에 놀라 심혁성을 놓아두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다남리 이딩1휩페은 사망한 이은선의 6촌 친척인데 이은선의 죽음을 듣고서 순사의 잔혹한 행위에 분노하여 ‘죽은 사람에게 동정하는 지는 오늘 밤 12시에 계양면 사무소에 집합하라’는 통문을 만 들어 면내 각 동리에 회부하였다 . 밤 12시 정 약 200명의 군중이 계양면사무소에 모 였다. 이 지-리에 띤서기 이경응 {쉐씨;)이 나타나지 않았다 . 이담은분개히여 100여 명의 군중을 3. 경기도 3· 1운동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