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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징날이었던 1919년 3월 25일, 청년과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익= 20여 맹의 시위대가시정 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기-10명이 체포된 뒤 해산되었다. 디음날인 3월 26일, 전날 발생했던 시위대의 체포에 항의하여 아침부터 싱엔들이 점포 문을 닫고 철시시위를 전개하였고, 27일 에는전상점의 약40%인 60여 호가철시를단행했다. 이러한시위는장날인 3월 31일까지 전 개되었고, 이에 일제는군수로하여금상점을다시 열도록회유외-입팩을가했다. 4) 현황분석 -현황 . 1919년 3월 수원 장날에 일어난 3 ·1만세시위지는 수원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랑 히는 수원시장 일대에서 일어났다. 수원시장은 현재 크게는 남문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으로 구분되며, 지동시장, 팔달문시장, 수원영통시장, 남문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 시장등으로세분화되어 있다. 시장은 대부분 팔달문의 남동쪽에 몰려 있는데 수원천을 중심으로 영동사거리부티 지동교 까지형성되어있다 . . 1919년 당시 3· 1운동이 일어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현재의 ‘수원영통시장’ 인 수원천로 255변길과 팔달문로 101번길 일대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측되며, 사진자료에 근거하면, 팔달문동쪽 팔달문로를 따라 지동교까지인 것으로 핀단된다. - 현재까지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상업건물이 매우 밀집해 자리 잡고 있다. -문제점 3·1만세시위가 벌어진 역사적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대가 중심상업지구로 변모하여 그흔적을찾을수없다. 또한관련한안내판이나훗말등도설치되어 있지 않아개선이 필 요하다. -개선점 · 현재 수원천변이 정비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병소가 되었다. 수원시장이 수원천을 중심 3. 경기 남부 건조물 및 터지 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