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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고주리 마을 탄압지 1) 개요 2) 주제어 3) 유적 내용 3·1운동 학살지 191 떤 4월 15일, 01핸| 전개된 독립만세시우뻐| 대한보복으로일본군이 고주리 마을주민들에게 학실을 X뺑 한곳이다 변형/당시 고주러 마을을 모두 마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천도교인 6영을 학실했던 장소는 현IJ.:H 괴수원으로변해있다 경기도회성시 놀딴땐 고주골길 54--8 북우| 370141 α 동경 126"53℃l5.1” 고주리‘ 천도교. 김홍렬 김성렬 본 유적은 1919년 4월 15일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 발안장터 등에서 전개된 시위에 대 한 보복으로 일본군이 마을주민들에게 학살을 자행한 곳이다. 당시 고주리 마을은 일본군 에 의해 파괴되어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며 천도교인 6명이 학살당했던 장소는 괴수원 으로변해있다. -1919년 3월 고주리 마을대표였던 김성렬(金띨烈. 1871∼1919)은 백낙렬(['I樂烈, 1865∼19카), 안 종후(줬l짜. l앓9∼1919) 등과함께 서울에서 전개되었던 3·1운동에 참가하였다. 김성렬은 서울에서의 3·1운동의 기운을 고주리에도 전피송티I 자 하였고 비밀리에 고주리에서 만세 시위를 준비했다. 1919년 3월 31일과 4월 5일 제암리를 비롯한 고주리 ·수촌리 등의 인근 514 Ill. 독립운동 부동산 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