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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5월9일 1896년 5월 14일 1896년 5월 20일 1896년 6월 17∼23일 1896년 7월 14일 의흥관아 공격 경북 청송군 안덕면 성황현 전투 의성 비봉갓f 전투 경주성 전투 여더처트 。--, c 」, 마지막 전투가 되었던 영덕 전투는 영덕에서 관군 수백명의 습격을 받아 일어났다. 김하락은 r진중일기」에서 핀군과 일본군의 기세는 “비바람”콸f치듯 했다고 말하고 있다. 전력의 열세로 의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김하락은 “왜놈들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물고기 뱃속에 장사 를 지내겠디쉬고 하며 강물에 투신하였다. 병시- 몇 명도 뒤를 띠-랐다. 잔여 의병들은 또디-시 영 덕전투에서 패했다. 이후 안동의진 8월 19일에는 김도현 의진과 연협-히여 활동을 하다 얼마 후 해산한것으로보인다. 바. 이전지역에서의 재기 김하락이 이천의병의 일부를 이꿀고 영남으로 이동했을 때 대다수는 동행을 못하고 관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이천과 인근에 흩어져 몽을 숨겼다. 두 달이 지난 1896년 5월 30일경 잠적 해 있던 의병들이 다시 일어나 약 200∼300명의 진용을갖춘 이천의병은 6월 한달 동안 여러 차례 이천의 일본수비대를습격하고 일제 통신선을 절단히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서 전기의 경기지역 의병투쟁은 경기도 내 관포수들이 참여하여 깃빽한 무장력을 갖추 고, 조직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였으며, 경기도내 각 지역의 의병부대들이 연합하여 연합의진 을구성하고 백현전투등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님한산성전투 패배 이후 에는 충청도 제천의병, 영남의 예천 및 안동, 경주, 의성, 홍해, 청히, 영덕 등지의 의병들과 연 합하여 광범한 지역에서 전 투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발한 경기지역 전기 의병은 전 국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강력한 결집력과 전투력 적극적인 투쟁 속에서 애국적 투혼을 보여 주 었다. 34 II. 경기도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