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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양세력과의 충돌과 개화파의 형성 (1)제네랄셔먼호사건과병인양요 1866년 8월 20일(음 7.11) 미국 상인 프레스턴 (W.B. Presn。n)이 미해군 포함인 양륜증기선 제너 럴셔먼호(General Shenna깨ilf.)에 면화, 주석, 유리 등의 물품을 싣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 에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렸다. 평양 감사 박규수 이하 군민들이 배를 불에 태워버렸다. (제네랄셔먼호사건) 그해 정월 대원군은 천주교도 8천여 명과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을 처형했다.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댈(Felix-Claire Ridel) 신부는 중국 댄진으로 탈출하였다. 프랑스 극동전대 피엘 구스탑 로즈(Pierre-Gust‘ ve Roze, 깎}영씨 제독이 댄진에 와 있다 이를 듣고 1866년 10월 11일 라게 리에르호를 기함으로 하여 보급선 2척, 포함 2척과 호위함 1척에 함재 대포 10문, 총병력 1,000 명을 10월 16일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양헌쥬피梁젠i*)가 이끄는 549명의 부대는 11월 7일 야 간에 강화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을 점령히-였다. 이틀 후 정족산성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전사자 6명을 포함하여 60∼70명의 사상지를 내고 패퇴했다. 프랑스군은 고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 11월 10일 함대를 철수하고 말았다. 북경의 모든 외교관들은 그의 원정을 실패로 간주하였다.(병인양요) (2)신미양요 제네랄 셔먼호 사건으로 지국 배와 인명에 피해를 입은 미국은 포함외교로 조선 을 개항시키 기로 작정했다. 아시아함대 사령관 존 로저스Oohn R。dgers)가 기함 콜로라도호(Colorado없)를 비 롯하여 군함 5척을 이끌고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로저스함대는 1871년 6월 1일 인천 앞바다에 와서 일방적으로 강화해협 탐측 항행을 강행하였다. 미국함대가 강화도 손돌목에 이르자 연안 강화포대는 포격을 기했다.(손돌목 포격시컨) 미국 대표는 조선 측에 포격에 대한 사죄 및 손해배 상을 요구했다. 조선측은협상과사죄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미국은 포병대 ·공병대 등을 107R 중대로 상륙군 부대를 편성하고, 6월 10일 초지진(받효鎭)을, 6월 11일에는 덕진진과 어재연(·‘在淵)의 수비병 600여 명이 배치되어 있는 광성보를 점령하였 1. 경기도 독립운동의 배경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