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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다시 국회의장에 피선되었다. 이어 제3대 민의원에 도 당선되었으며,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 발전시키면서 대표최고위원이 되 었다. 지유당의 이승만에 맞서 1956년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였지만, 출마 3일 만 인 5월 3일 호남지방으로 유세하러 가던 도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그에게는 185민여 표의 추모표기- 던져졌으며, 5월 23일 국민정-으로 장례가 치러져, 서울 우이동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 였다. 4) 현황분석 -현황 · 일제의 치별에 항거해 학생들이 항일집단행동에 나선 역사적 사건의 장소이다 . . 굉주공립보통학교 자리에 현재 광주초등학교가 그 맥을 잇고 있다. · 바로 인접하여 경안근린공원에는현충탑 3·1독립운동기념탑 호국유공자공적비 등이 조 성되어 있어 항일역사유적지로서의 연계가용이하다. - 기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한옥의 외관을 잘 간직히고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룬다. 중앙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 죄측으로 건넌방 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 부엌을 두었다. 비깥채는 기지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조}측 에 2칸의 사랑방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19세기 또는 20세기 초 경기 지역 중소 지주의 기옥 형태를 취히고 있다. 그러나 기둥의 일부 부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부재가 가늘고 치목 수법도 오랜 것이 아니다. 적어도 20세기 초에 들어와 크게 개축된 것으로 짐 작된다. -문제점 ·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비교적 잘핀리되어 있어 큰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는다. 「신익희 공적조서」에 당시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광주시청 훈페이지에 의하면‘ 윈래는 지금 위치에서 동납쪽으로 약 200m 지점에 가옥이 있었으나, 을축년(ζ」l;年) 대홍수0925년 ‘ 광주시청 홈페이지에는 1865년으로 장못 서술하고 있다)로 집이 파손되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하는데, 건축물대장에도 1925년에 건축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168 Ill. 독립운동부동산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