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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로 호송된 최익현 선생 (독립기념관) 1 906 창의토적소 (독립기념관) 4) 현황분석 -현황 역복의제소(꾀i1iJ꾀짜페ill)빠)〉를 올려 항일 척시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고종으로부터 많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시-퇴하고 일본 배척을 주장하는 상소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1905년 을시늑약이 체결되자 〈청 토오적소(,패,;·HJ내‘빠0)와 재소를 올려서 조 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할 것과 밍μ국조 약에 참여한 빅-제순(사깐패 등 오적을 처 단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종전까지의 상소투쟁을 항일의병운동으로 전환하여 7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임병찬(싸씨 瓚. 1851∼1916) 선생과함께 의병휠동을 전 개히-다순장에l서 체포되었다. 이후 대마도로 이송되어 1907년 옥중에 서 아시- 순국히-였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 는 1962년 최익헌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 한민국장을추서하였다. · 최익현 선생이 태어난 생가 터이다. 포천시의 북쪽인 신북면 가채리 709번지가 본 유적의 위치이다. - 선생의 생가 터는 포천시청 정북방 1.8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도심에서 벗어난 한적한 농촌마을의 초입에 해당한다. - 생가 터가 있는 미을은 가링-산 남쪽 지맥이 감싸고 있는 형국에 위치해 있는데,주변으로는 1126 |||.독립운동부동산및 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