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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록은 강원도 화천(華川) 사람이다. 화천면의 3·1독립운동은 천도교인에 의해서 추진되었는데 화천면 신읍리(新邑里)의 천도교인 김창의(金昌義)가 주동인물이었다. 그는 김창의를 중심으로 이은규(李殷奎)·강석대(姜石大)·김한식(金漢植)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계획을 결의하여 3월 23일 화천읍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하남면 논미리(河南面 論味里) 와 구운리(九雲里)·상서면 노동리(上書面 蘆洞里), 그리고 화천면 풍산리(豊山里)에도 연락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하였는데 거사 전날 밤 풍산리 주동인물이 붙잡혀 23일 장날 화천읍의 일제측 경비는 철저하게 되었다. 이것을 알지 못한 신읍의 여러 마을에서는 계획대로 만세시위운동을 추진하였고 주민들에게도 알리었다. 그는 이날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신읍리에서 화천읍으로 시위행진하던 중 핑구고개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헌병에게 붙잡혔다. 그는 이해 5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았으나 7월 7일 공소를 제기하여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