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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사 장두집강공의 약력 1842년 헌종8년 임인생 휘 우경 (一) 1898년(광무2년) 친일파 군구 향장 순교사령 수서기 형방서기등의 비행에 항거 항일투쟁타가 옥고를 치름 (二) 일본인의 고문정치가 이루어짐에 분연 궐기한 공께서 총지휘관인 장두집강으로서 1904년(광무 8년) 9월 14일을 기해 사발통문을 돌려 시흥군 6개면 2동의 천수백명을 한천(현 구로공단)에 집결케 하여 항일폭동하자 이를 진압코자 출동한 군수 박우양 부자와 긴급출동한 일본인 병사중의 2명등 4명을 살해함에따라 경기재판소는 총지휘관인 성우경을 '협제관이죄'로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해 서대문감옥에 투옥 수감됨 (三) 1908년 음 정월 2일자 반소문에의해 평리원 한성재판소 기결수중에 가합감등건을 법무대신 잏영이 임금에게 상주하여 기결수 감등법을 적용 '성우경협제관사죄역종신감일등오년' 이라는 형의 강등처분이 내려 종신형에서 15년형으로 감등됨 (四) 1907년 순종임금께서 즉위와 동시 33회 탄신축하일 천추경절인 국경일을 맞이하여 1907년 2월 27일자로 평리원 기결수 석방렬에 의하여 특사로 석방됨 상세한 내용은 창녕성씨 상곡공파보 문헌지 제922항 참조. 종손 희수 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