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page

저14장 始興에서의 훔歲펠動 3 · 1독립만세운동은 이후 약 60여 일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파급꾀어 나갔으 며, 4월말이 지나서야 일단락되었다. 만세운동 중에는 전국 2127~ 시 ·군에서 약 l천 5백여 회나 궐기하였고 참가자는 2백여 만명으로 추산되며 일경에 의 한 피검자는 4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경찰 통계로 발표된 사망 자만도 7,509명, 또 부상자는 15,961명이라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 몇 배나 되었으며, 건물피해는 교회가 47개동, 학교 2개동, 인가는 715개동이 소 각또는파괴되었다. 3·1독립만세운동에서 시흥 군민들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일체에 항거하 였다. 구체적으로 보띤 3월 23일 노량진에서 약 3백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으나 곧 해산되었다. 3월 26일에는 신동면 양재리에서 3백여 명의 군중이 운동을 개시하였으나 해산되었다. 3월 28일에 서면 소하리 소재 노옹 사경찰관주재소에서 소위 불온언동자 1명을 검거하였는데, 믿民 약 3백명이 이를 탈환할 목적으로써 주재소로 몰려와 방화를 하며 시위하였으나 곧 해산 되었다 3월 29일에는 군내 여러 곳에서 약 1백명의 군중이 방화를 하고, 만 세를 외침으로써 주모자 2명이 체포당하고 일제의 총류 사격을 땀은 후에야 해산하였다. 3월 30일에는 2천명의 군중이 운동을 개시하였으나 꼼 해산되었 다. 31일에는 의왕면 군중 약 8백명이 면사무소 고천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독 립만세를 고창함으로써 경찰관이 보병과 협력하여 해산시켰다. 같은 날 군포 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 약 2천명의 군중이 운동을 개시하였으나 보병과 협력 한 일경에 의하여 헤산되었다. 4월 3일에는 거모경찰관주재소 및 군자면사무 소를 방화하기 위하여 면민 전부에게 주재소 앞으로 집합하라는 취지의 협박 …… ……· (4] 광명지역의 3· l독립만세운동 86
85page

제4장 시흥에서의 만세운동|시흥군지
85page

제4장 시흥에서의 만세운동|시흥군지
85page

제4장 시흥에서의 만세운동|시흥군지
85page

제4장 시흥에서의 만세운동|시흥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