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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승낙하여 그 곳으로 갔더니 약 20명 가량이 모여 있었다. 판의병이 이순만 과 함께 이들을 이꿀고 소하리 내대촌(內太村)으로 갔는데, 면사무소 부근에 약 50명이 모여 있었으며 최호천이 이를 인솔하고 있었다. 이 때 이종원이 일 동을 향하여 “이종석을 찾아 돌려 달라”고 호소하였다. 최호천은 윤의병에게 “이 인원만으로는부족하니 내가리대리(內끼lllo!_샌파)의 사람들도모아서 습격 하자,”고 말을 꺼내자 각각 이팔고 있던 시위대를 합하여 가리대리로 향하였 다. 한펀 최호천은 3월 28일 밤 동리 사람을 모아 놓고 노옹사리 주재소로 가 서 이정석을 구하까고 제의하여 이미 동리 사람 1백여 명의 동의를 얻어 놓은 터였다. 이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윤의병이 다시 부근 의 동리인 내가리대리의 동민 1백명을 더 모집하여 모두 2백여 명이 되었다. 최호천과 윤의병 두 사람은 시위대를 향하여 “어제밤 이정석이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하여 주재소 순사보에게 인치되었으니 오늘 밤 그를 찾아 올 작정이다.”는 취지를 알렸다‘ 이후 최호천이 2백여 명을 통솔하고 윤의병은 솔선하여 군중을 지휘하였으며, 이종원과 동리 사람 검거봉-최정성 -유지호· 최주환 둥 5명이 암장서서 노온사리 경찰관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로 향 하는 도중에 최호첸은 시위 군중에게 “곤봉이나 돌을 가지고 가자”고 말하였 다. 또 주재소 앞에서 시위대들이 합세를 할 때에 최호천은 “만일 이정석을 내 어 달라고 강박하여 주재소 직원이 발포히-거나 폭행을 하더라도 결코 퇴각하 지 말라. 휴대한 돌이나 곤봉으로 대항한다.”고 제의하며 군중웰 선동하였다. 이리하여 동리 사람틀은 곤봉과 돌을 준비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시 위대는 먼저 주재소를 포위하고, “이정석을 내 놓아라.”고 힘-성을 질렀다. 이 들은 또 몽둥이로 주재소 앞 게시판을 때려부수고, 주재소 숙직실 벽에 l치 평 방쯤의 구멍을 뚫고 침식 문짝을 작은 돌로 한두 번 던지기도 하였다. 이때 오 후 10시가 넘었다‘ 그러나 주재소 안에 있던 일본 경찰 亦松 순사, 최(崔) 순 세3장-광영지역 3· 1독렵만세운동의 전개과정과특정 ’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