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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걸쳐 재산띄 균분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칭하여 자못 꽁산주의적 언사 를 농하는 자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전라남도 담양군(댐陽빼) 읍내 부 근에서는 “하층 조선인 청년 사이에는 조선독립시 재산을 평등하게 나눠 줄 터이므로, 빈곤자보서는 무상의 행복이 될 것이라고 칭하면서 독립의 실현을 기대하는 정황이 있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이는 홍순칠의 선동과 맥을 같이 하는내용이라할수있다 이와 같이 농만들이 균산주의(均잖主끓)를 상당히 호소력 있게 받아들인 사실은, 갑오농민전쟁에서 나타난 ‘토지의 평균분작’과 같은 전통적인 균산 주의에, 새로이 전파되고 있었던 새로운 사조의 영향이 결합된 결과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례들은 농민운동이 토지혁명의 슬로건을 걸고 나아갈 때 폭발적인 위력을 지닐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시흥지역의 경우, 빈-외 세·반봉건의 성격을 지닌 민중봉기가 한말에 두 차례 일어났다는 역사 경험 과 홍순칠 등의 균산주의가 결합히-여 새로운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제2장-광영지역 3· 1독렵만세운동 배경 •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