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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소유 상황을 보더라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10% 미만의 부농-부농 의 경우도 자작농으로 생활하는 자가 있었다-이 60%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결과, 대부분의 농민들은 토지 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즉 당시 대다수의 농민들 은 50부(@) 미만의 자 소작지를 소유하여 경작하였는데, 이 정도의 농업소 득으로 과도한 조세·지대를 내고 나면 농업의 재생산은커녕 자신들의 생계 유지마저도어려운형편이었다 이러한 경제 여건판 식민지 시기에 틀어 더욱 악화되었다 대개는 지- 소작 농으로 농업경영을 하는 빈농이었으며, 소작농은 더욱 늘어났으렉라 생각한 다. 시흥지역에서 일제가 농민을 수탈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여건이 되지 않으므로 경기도 전체 지역과 관련된 통계를 인용함으로써 이를 간접으 로추론하고자한다. 1910∼1918년 사띠 경기도 내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한 토지의 규 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음은 일제의 토지약탈이 어떠하였나를 가늠케 한다. 1910년에 동척 (써JTi) 이 소유한 토지는 답 1,964정보, 전 1,737정보로 모두 3,701 정보였다. 그러나 1918년에는 답 4,925정보, 전 3,711정보, 기티- 368 정보로 모두 9,005정보로 증가하였다. 즉 1910-1918년 시-이에 답은 2,961 정보, 전은 1,974정보, 여기에 기타 368정보를 포함하여 모두 5,304정보가 증가하였음을본다. 토지조사사업 이전인 1910년 12월말 현재 경기도 내의 답은 115,576.0 정보, 전은 111,973.8정보로 모두 227,549.8정보였다. 그러나 토지조사 결과 1918년 7월말 현재 답 198,637정보, 전 187,165정보로 모두 385,802정보 로 중가한다. 이를 보면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토지는 답 83,061.0정보(증가 율 71.87%), 전 75,191.2정보(중가율 67.15%)로 모두 158,252.2정보(증기- 율 69.55%) 가 증가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경기도 내의 토지면적이 69.5% 증가하였음에 비하여, 동척이 소유한 토지는 1910-칸91:3년 사이에 ... [4) 광명지역의 3· 1독립만세운동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