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page

62 *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 시흥군(혜뺏/lll_3. 1 운동당시의 행정구역 영칭)· 머리말 시흥군은 경기도 가운데에서도 서울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 찍부티 시위가 시작되었다. 3월 7일 시흥군 영동포에서 보통학교 짝생이 만세 시위 후 동맹휴학을 결의한 이래 4월 발까지 20여 회에 걸쳐 연인원 1만여 병 의 참여 아래 전개되어 경기도 내에서 가장 많은 시위 횟수를 기록하였다 물론 시흥군의 경우도 처음에는 청넌 학생이 시위를 주도해 나갔으나 점차 농촌 지역으로 파급되면서 농민이 그 주역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 곳의 시 위 주동자들도 어떤 특정한 지도 시-상이나 정치 결사체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지도된 운동이 아니고 각 계층의 민중이 스스로의 사상과 투쟁 방법을 통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이었다. 1. 북연(北l띠) 영등포리 (永션뼈다 l.) 에서 3월 7일 시흥공립보통학교 동맹휴업과 만세시위가 있었으며, 상인들이 3 · l독립만세운동 이후 모두 가게를 철시하자 3월 말경부 터 군수·경칠서장 등이 상점을 돌띤서 가게문을 열도록 설득하고 다니기도 하있다 3월 23일에는 탄원기(씨 1'!;니Jι) 등 400여 병의 주민이 독립딴세시위 를 벌임과동시에 당산리(’낀1 I111!.) .노량진리(?씻~Ui': 'l!J ·양평리(짜J'i; 'I!.) 등에 서1 모두 1,2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도심에 속하는 영동포 시위에는 전벤 과 같이 일본 병릭이 출동하여 진압하였다. 대체로 서울과 아주 가까운 지역 은 서울 시내의 만세시위와 보조를 같이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구로리 ()Lεl끄)에서는 3월 29일 100여 명이 시위하자 발포하여 강제 해 산딩-하였으며, 신길리 (제 ,',: 'llJ 주민들도 민-세시위를 벌였디 요. [3] 서울 경기도의 3· l독럽만세운동
61page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시흥군)|정진각
61page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시흥군)|정진각
61page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시흥군)|정진각
61page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시흥군)|정진각
61page

*3·1독립만세운동의 전개(시흥군)|정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