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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딴세’ 라고 쓴 큰 깃발을 선두로 악대의 주악에 발맞추어 태극 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시내의 한콰인과 합세하여 다시 시가를 누비고 다니면서 한국어와 한문으로 인쇄된 독립 선언서를 살포하였다. 시위 군중이 기세를 쏠렸지만 이 곳에서는 중국 군대와꾀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문(1!따”J) 밖 광장까지 행진해 나온 시위대는 며칠 전부터 사망에서 몰려 온 지방민과 함세하여 2천여 병으로 증가되었고, 이들은 둥글게 전을 치고서 독립 축하식을 개최하였다. 먼저 주최자의 한사람인 황병길(파|서 ,',:) 이 독립 연설을 하여 모인 군중을 감동케 하였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군종은 모자를 빗고만세를불렀다. 뒤이어 노종환(1텀짜뺏) 최병운(젠자文) ·김정규(金피 n 등의 연설을 듣 고폐회하였다. 감격적인 독립 축하회를 마친 군중은 다시 동문 쪽으로 시가 행진을 벌였 다 행렬이 시가 끝에서 얼마쯤 떨어진 강변에 이르러서는 둥글게 진을 만들 고서 학생 악대는 주익을 울리고 군중은 만세를 부르면서 몇 차례 벙벙 돌다 가 오후 1시경에야 조똥히 헤아졌디-‘ 이 밖에도 3월 26및!에는 긴도 펙초구UI l ’ 1 ’[f 가 있었고’ 31일에도 낀-도 고집지(|;‘;d↓ uι) 외에서 1천여 군중이 복립 선언식 을 거행하였으며, 4월 10월에는 대도구(人펴팎)에서 2천여 명이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3월 21일에는 봉천(싸λ) 안산참(,歐1!1피1;) 에서, 25일에 는 간도 영화사 송언(永化社松싸), 27일에는 간도 국자가(!~.) f街), 30일에는 간도 곤륜산en써1I1). 4월 4일에는 간도 대왕청 (人ff해)과 대감자(人k n. 12일에는 용정, 17일에는 동대인구, 18일에는 간도 냉수천자(冷水JR. f) 에서 각각 크고 작은 만세 운동이 발생하였다. ------ …… [2) 3· l독렵만세운동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