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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국의 독랩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식전이 개막되었다. 33인의 민 족 대표가 예정을 바꾸어 이 식전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군중의 한사람인 경 신학교(做新렌校) 졸업생 정재용(었~{f협)이 한 장의 선언서를 뚫고 단상에 올라가 감격에 넘치는 음성으로 독립선언서를 읽어 내려갔다. 2천 6백여 자가 되는 독립 선언서의 낭독이 끝날 무럽에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군중 속에서 터져 나왔다, 파고다 공원은 만세 소리로 천지가 떠나갈 듯하였다. 학생들의 모자는 한꺼번에 하늘로 솟아오르고 서로 얼싸안고 퉁실둥실 춤 을 추었다. 처음에는 학생들만이 모였던 파고다 공원에는 어느 사이에 서울 시민과 지방에서 고종 황제의 국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만세의 함성은 끊일 줄 모르고 계속 터져 나왔다. 이것은 우리 민족 전체의 환호성이요, 자주 독립을 갈구하는 울부젖음이었다.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학생과 시민들은 곧 공원 문을 뛰쳐나 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질서정연한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 시위 행진 대열에는 학생·신사·상인 농민 도유(현f빠) 등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너나 할 것 없이 가담하여 서울 시가를 골고루 누비면서 우리의 독립을 외쳤다. 이것은 민족대표틀이 예측힌- 대로 국장으로 인하여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수십만 민중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또 서울 시민이 만세 시위 행렬에 끼어 들 었기 때문이었다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다 그 일대(-隊)는 똥로(첼路)에서 광교 ()뭔橋) · 남대문(I힘-人-門) ·남대문 역 을 돌아 의주통(義州펴)으로 꺾어들어 프랑스 공사관(公使패) 쪽으로 행진하 였다. 다른 일대는 종로에서 대한문(人l폐녁) 앞에 이르러 머물면서 만세를 불렀 다. 그 일부는 일본 군경의 제지를 물리치고 대한문 안으로 들어가 고종 황제 ------- … ---- (2] 3· l독렵만세운동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