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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明地域 광명지역은 군청과 가까운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검되었다. 차례로 이 들의 증언을 실-피고자 한다 『鐵1l11r1_의 양인 센永光 (36세)은 9월 15일 光깨J'I!_의 재모임시에 집강들이 토의하여 작성한 소장을 기-지고 경기도 뻐察”、j로 이송 중 체포된 사람이다. 나는 鐵1!111!에 사는 소민으로 마을의 집강과 같이 한천의 민회에 참석하고 같이 읍내에 들어 갔으나 나는 군중의 뒤에 있어 단지 먼저 들어간 지-가 일본 인을 살해한 소식을 들었을 뿐이고 동헌의 작변이 일어남으로 인해 오후에 해 산하고귀가하여 작변씌 일은정말로보지 못했다. 4일에 사발통문이 광화대리에서 우리 마을에 전달되었는데 :4섬i1TI의 ?”J J해 |”j 집에서 나왔다고 들었으나 역시 자세히는 모른다 5일에 각 마을 집강이 마 을 사람과 같이 한천교에 모두 모여 하주명, 충훈부에 사는 성우겸과 一따111. 에 사는 주사 민용훈이 노동지-의 모집건을 재판한다 칭하고 군민쓸 거느리고 읍내로 들어기- 관가에 다다랐다. 일본인들이 갑자기 칼을 들고 돌전하여 앞에 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 이로 인하여 변란이 격앙되었고, 많은 사람이 투 석하여 전쟁터를 방불케 되었고 동헌내에 난입하여 이런 대변란에 이르렀는 데 변란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 나는 정말로 알지 옷하나 대개 펴살된 사람 이 사는 미-을사램괴 친척이 먼저 변란을 일으킨 것으로 여러 사럼에게 들었으 며, 삼막동의 하주명은 칼에 귀를 부상당하여 즉시 물러나고’ 〕tr꺼 IJ!_에 시-는 이름은모르지만민기 사망을 호소하고 동헌내에서 난동을 먼저 일으킨 자는 이들이고, 그 외의 성 화도리 이름은 모르지딴 젊은 한 사람과 신럼리 이름은 역시 모르지만 상제인 한 사람이 부상당했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내가 과연 듣지 못했다. 6일에 광명리에 r'J-쩍시에 걱- 미-을 때網이 모두 모였는데 그 중에서 민주사 가 소장을 나에게 주면서 왈 많은 사람이 관내로 들어감은 소동이라 도리어 .. [6] 한말 시흥의 농민운동-[셰l생 19세기 죠션왕」ξ의 사회석 상황]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