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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톨뼈렐 안양지역에서 농민봉기의 주모자 및 취회시의 수창자로 연루된 세 사람의 증언을 살펴보연 다음과 같다. 갓찮뽀(현 안양시 석수동) 집강이며 유학인 ‘l/;ft~징-(당시 63세)은 9월 15 일 관찰부에 이똥하려던 소장의 장두였다. 다음은 그의 중언이다. r나는 연로하고 귀머거리에다 배우지 않아 무식한 자였는데 초 5일(양력 14 일) 맨達멍로부퍼 통문이 내도하기에 나는 한천교에 가본 즉 각 마을 집강과 사람들이 일제허 모인 중 밍짧IJ府에 사는 成禹앓이 먼저 군중에게 연설하던 말 중에서 이번 노동자 모집은 내부의 관찰부 훈령에 의해 모집한 것이요 본 군 수의 자의에 의딴 강제 모집은 아니다 다른 읍보다 먼저 모집한 것은 비록 좋 은 처사는 아니치만 그 외에 가히 두려워 할 단서는 없다고 운운하니 군중 중 에서 태반은 옳다 하나 유독 삼막동의 M周明이 뛰어나와 큰 소리로 성우경이 본군수와야합하여 노동자모집 중에 돈을받았기에 이런 엄호의 말을한다 하니 군중이 일제히 뛰어나와 성우경을 구타하니 장내가 대단한 난장판이 되 었다 이에 재판을 한다 하고 일제히 읍내에 들어갔는데 나는 연로하고 병이 있어 이들을 따라 갈수 없어 뒤떨어져 귀가하였더니 뒤에 소식을 들은 즉군 수와 외국인(일펀인)이 죽었다 하는데 내가 보고 들은 깃은 이것 뿐이요, 그것 을 범한 자가 누구인지 가히 알지 못하며 6일 광명리 재모임시는 내가 참석하 지 아니하여 관첼부로 소장을 발송한 사실은 듣지 못했는데 소장 밑에 내 이 름이 있는것은어떤사람의 소행인지 모른다j 맨~및(현 안양시 박달동)에 사는 소민 朴洛|띠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사발)통문이 -1(〔 111.에서 도달하는 까닭에 나는 집강의 위임으로 한천으 로 가서 군중의 뒤에 서있었기에 단지 성우경 히-주명의 엔설만 들었고 읍에 3.층언 •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