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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흩民의저항 19세기는 농민(민중)운동의 획기적인 시대였다. 그것은 純페 11년 (1811) 싸 景來亂(관서농민전쟁)을 시발로 크고 작은 농민봉기가 잇달아- 일어나 한 지 역을 점령하거나 전국적인 규모의 형태로 확대된 저항도 있었다. 1800년대 이 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농민반란(민란)의 3대민란은 @ 1811∼12년의 잉{처b’‘亂, (2) 1862년 1:1갓民亂, @ 1894년 束學 農民運펠l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농민운동은 상호의 연관성을 가지면서 한국근대화의 밑으 로부터의 변혁운똥으로 볼 수 있다. 洪뭘-來짧L은서북인의 차별대우에 대한중앙정부에 대한항거였다 이 난의 지도계층은 행파, 상인, 중인, 부호, 향리 둥으로 구성되었으나 주체세력은 초 기에는 광산노동차가 주축이었다가 차츰 농민층으로 가담하므로써 중추세력 을 형성하였다. 이 난의 직접동기는 서북지방인에 대한 차별대우였지만 그 이 면과 난의 경과상황을 고찰하여 보면 지방관들의 농민에 대한 지나친 수탈에 반발하여 농민들띄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王flt~亂은 센宗 13년 (1862) 진주민란을 기폭제로 하여 이 해 전국 351R 처에서 중앙정부에 항거한 농민의 봉기를 뭉쳐서 일컬어진 농민운동이었다. 이 난은홍경래란과성격을약간달리 하고 있으니 홍경래란이 중앙정부타도 라는 기치를 걸었는데 반하여 임술민란은 농민 스스로가 권떡을 옹호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고 조직적인 저항보다는 지방관의 탐학에 견디다 못하여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났다고 보아야겠다. 1894년 束텔않民述떼1은 임술민란에 대한 중앙정부의 사후처리가 미흡하 여 농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되어 왔고 동학이 창도되어 동학의 교구·교직제 3. 농민의저항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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