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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원겸 (랬元짧, 1867 ∼ 1909) 경기도 시흥군 서면 친두리 (폐興|!|; ,,니|끼l 鐵펴lj!_, 지금의 광명시 칠산리) 324 번지 사람이다. 길찬범 c ,'rrt패) 의진에 참여하여 충남 직산({껑1 !1) 에서 활약 하였다- 1905년 11 월 「을사륙약(ι니씨j約)」으로 일제에 의해 지-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김-부(統값J{J‘)기-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 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에 도래하였다. 이 렇게 되자 우리 민족운 본격 적인 만일 국권회꼭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망향에서 전개되 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릭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 활동, 종 교와 그 단체를 통한 종교 활동,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림을 통한 교육 활 동, 국어와 국사 연구플 통한 학술 활동 등 각 방변의 국민계몽운똥으로 진행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것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 ]',j;;7條폐)」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 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 대열에 참여힘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쓰로 확대되 고있었다. 정-원검은 이 같은 시기인 1907년 박홍석(*|、싸않) 등과 힘께 겔친-범 의진 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 8월 14일 동료 의병 수십 명 과 더불어 충남 직산군 순사주재소를 슴격히-여 명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 다. 그러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1909년 5월 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 년을받아옥고를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 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 서하였다밥 ………… -- (5) 황영지역의 3· l독립만세운동째딴판청 번역훈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