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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항일독립운동사적지의 활용방안 29 받았다. 특히 광복군 활동을 했던 문덕홍(文德洪)은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상하이·홍콩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40년 탈출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해 활동했으며, 1942년 10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 었다. 1945년에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 경호실장으로 승진했다. 1990년 임시정부 와 관련하여 애국장을 인정받은 고수선(高守善)은 가파도가 고향으로, 상해 임 시정부로 보내는 군자금(軍資金) 송금 활동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4. 제주항일독립운동사적지 활용방안 이상과 같은 항일독립운동 유공자들이 활동했던 장소들이 집터, 건물, 묘지 등 사적지로 남아있다.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 결과, 첫째, 조천읍 조천리에 항일 독립운동 사적지들이 밀집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현상은 조천리가 조선 시대 유배인들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조천리에 일시적으로 적거한 유림(지식인)들 이 많았던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마을에 있는 제주항일기념관을 거점 으로 주변에 산재해 있는 항일독립운동 사적지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조천리를 제주도 항일독립운동의 메카(중심지)로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제주지역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는 사회주의와 연관관 사건들과 인물이 많았다. 실례로, 신인회 사건, 적색농조 사건, 야학사건, 혁우동맹사건, 소비조합 사건 등등에 관련된 활동지와 인물들을 들 수 있다. 강창보, 김문준, 고순흠, 김 명식은 일본과 서울지역에서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이다. 셋째, 1909년 제주의병운동은 제주도민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제주인들이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였 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고사훈은 제주의병운동을 이끌었던 의병장으로 그의 사적지는 활용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009년에 이루어졌던 제주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조사에서는 단체 활동지와 항 일운동가의 집터를 위주로 조사하였으나, 아쉽게도 당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 다. 단체 활동은 별도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 집이 활동지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신인회 활동지는 송종현 집, 적색농조 활동지는 김경봉의 집이었다. 이들 사적지들은 현재 도로에 편입되어 당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근래에 들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항일기념관, 독 립운동기념관 또는 인물·사건 기념관을 건립하여 지역과 지역민들의 정체성 알 리기와 자긍심 고취에 노력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를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