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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준(任哲準) 1851.11.13~1907.07.07 / 의병 / 건국훈장 애족장 충북 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임철준은 일제가 1894년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1896년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참여하여 참모장(參謨將)을 맡아 활약하였다. 제천의진은 1896년 초 경기도 양근(陽根).지평(砥平).강원도 원주(原州).충북 제천(堤川)에 이르는 일대의 의병이 대부대를 형성한 것으로, 제천을 중심으로 충청도.경상도.강원도의 3도가 접경하는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임철준은 제천의진이 해산되고 의병장 유인석과 부대원이 만주로 망명하자, 1907년 제천에서 재 거의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좌종사(坐從事)로 참여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단양(丹陽).제천(堤川).원주(原州).연풍.영월(寧越).횡성(橫城).강릉(江陵).청풍(淸風).충주(忠州).문경(聞慶).예천(醴泉).영주(榮州).봉화(奉化).안동(安東) 등 3도 14군을 휩쓸며 적과 대적하였다. 특히 1907년 7월 5일의 제천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멸하여 사기가 충천하였고 동년 9월 16일 제천 추치에서 대전하여 적 200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동년 9월 27일 죽령(竹嶺)에서 다시 적 200명을 사로잡는 등 경상.강원.충청도 일대에서 강력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임철준은 불행히도 위 죽령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