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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독립운동] 김좌진 金佐鎭 1889-1930 홍주 출신.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1904년 15세 때 집안 노비 30명을 해방시키고 상경하였다. 이듬해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귀향해 신문학을 가르치는 호명학교를 세웠다.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대한광복회에 가담했고, 이후 부사령관에 선임되어 만주로 파견되었다. 1919년 2월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 39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서 독립군 간부 양성에 주력했고, 1920년 10월에는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빛나는 승첩인 청산리대첩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1925년 북만주 독립운동세력을 통합해 신민부를 조직했고 1929년에는 신민부의 군정파를 주축으로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