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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황 1. 피의 능선 전투('51.8.18~8.22) 국군 제5사단과 미 제2사단이 주력이 되어 적12사단 1연대와 27사단이 점령한 983고지 일대를 집중공격, 적에게는 천연적인 방어를 제공하여 아군에게는 "눈위의 혹"이라 불렀던 983-938-773일대의 고지군을 점령한 전투, 이 전투로 적은 사살만 1,250명에 이르렀고 아군 역시 전사상자를 포함 1,030명의 피해를 입었음. 특히 하루 평균 3만여발, 최고 5만여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적이 설치한 2,000 여발의 대인지뢰로 수많은 발목 절단 부상자를 감수해 가며 끝내 고지를 탈취하는 모습을 본 미 성조지 기자는 "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으로 격전상황을 보도, "피의 능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됨. 2. 단장(斷腸)의 능선 전투(1차: '51.9.13~9.26/2차: 10.5~10.13) 30여일간 미 제2사단과 적6사단, 12사단이 총력을 경주한 전투로서 1일 평균 45회의 전폭기 출격과 일 평균 1,000 파운드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931고지 일대에만 30여만발의 포탄이 집중됨. 이 전투는 결국 적에게 1,470명의 전사자와 22,600명의 전상자를 안겨다 준 채 미 제2사단의 승리로 끝나 공산측을 휴전회담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데 결정적 계기가 됨. 그러나 전투가 치열했던 만큼 아군 피해도 커 597명이 전사하고 3,000여명이 부상당하였는데 이를 취재했던 미 종군기자가 "Heart Break Ridge"로 표현한데서 "斷腸(단장)의 능선"이라고 명명됨. 3. 백석산 지구 전투(1차: '51.9.24~9.27/2차: 9.30~10.1)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출이 부진했던 시기에 국군 제7사단이 적 제 32사단, 12사단과 접전을 벌인 이 전투에서 적 사살 856명, 포로 760명의 전과를 올린데 비해 아군의 피해는 적어 전사 95명, 부상 290명의 손실을 입음. 이 전투로 인해 중동부 전선이 4㎞ 이상 북상되었고 인접부대의 진출을 엄호하면서도 서쪽고지군 일대를 탈환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조성됨. 4. 도솔산 지구 전투(51.6.4~6.19) 최초 미 해병 제1사단이 공격을 담당하였으나 상당한 손실만을 입은채 물러나고, 뒤 이어 한국군 해병 제 1연대가 최초로 산악전투에 투입됨으로서 적 12사단을 격멸하고 쾌승을 거둔 전투. 해병 제1연대는 이 16일간의 전투에서 24개의 고지군을 탈취하고 칠흙같은 밤과 안개속에서도 귀신같이 적을 찾아내어 궤멸시킴으로서 최초로 "무 적 해 병"이란 칭호를 얻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음. 해병대의 신화를 창조한 이 전투에서 3,263명의 적을 사살하고, 아군은 115명의 전사자와 603명의 부상자를 냄. 5. 가칠봉 지구 전투(1차: '51.9.4~10.14/2차: 10.27~10.31) 국군 제5사단이 2차에 걸쳐 적 2사단과 7사단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사살 2,604명과 포로 270명 등 전과를 가칠봉을 확보한 전투임. 특히 김일성이 전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진 김일성 고지와 스탈린 고지를 수차에 걸쳐 목전에서 공격, 종전후 155마일 휴전선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적을 발아래 관측할 수 있는 고지인 가칠봉(1,242m)을 수중에 넣음. 이 전투로 아군은 전사 824명, 부상 4,200 여명의 손실을 입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