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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접근이 금지되었던 박산골 학살장의 유골 517구를 유족들과 상의하여 발굴 화장해서 합동묘역을 조성하여 위령제를 올리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그 후 군사 정권에 의해 유족회가 반국가단체로 혐의되어 많은 고초를 당했다. 공은 유족회 부회장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되고 이어서 서울혁명검찰로 송치되었다가 다시 부산교도소로 이송되어 보통군법회의의에서 무혐의로 석방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한편 유족회 4대회장을 맡아 34년간 합동묘역위령비 건립사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하여 갖은 고초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끈질기게 요로에 투쟁하여 원혼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 돈지 45년만에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 공포되고 추모공원의 준공이 있기까지 온갖 풍상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결같이 유족회만을 위해 헌신하였다. 아! 그 오랜 세월동안 흘린 눈물은 바다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이제 유족회 회원들이 그 공로를 잊지 못해 공로비를 세우니 공의 눈물과 한숨 정성이 하나로 승화되어 구천에 떠돌던 원혼들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도다. 위대한 그 공적은 천추만대 더욱더 빛날것이며 자자손손 그 공 잊지 않으리라. 2015.8.4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