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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도 선생은,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8년 일본 대판(大阪)으로 건너가 법랑직공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제의 한국통치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민족차별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따라 한민족을 해방하여 그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조국의 독립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결심하였다. 1936년 4월 동향인(同鄕人) 이수룡(李守龍)·이수강(李壽康)·김성규(金成奎) 등을 규합하여 '재대판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를 조직한 그는 이후 약 두 달간에 걸쳐 회합을 갖고 일제의 민족차별정책과 한국 강점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한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우리가 일치단결로 봉기하여 우리의 국토를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고 독립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을 역설하여 회원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 후 동 단체가 일제 당국의 압력으로 해산당하게 되자, 1939년 2월 초순경 대판 주재 가덕인 청년을 결집하여 새로이 가덕인청년부회(加德人靑年部會)를 결성하고 일제의 한민족 차별정책 등을 비판하는 한편, 1940년 11월까지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민족정신 함양을 통해 독립운동에 매진할 것을 격려하다가 붙잡혔다. 1942년 9월 30일 대판지방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그 해 12월 22일부터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 10월 8일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