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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를 세우며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의 승리로 국치민욕 36년만에 드디어 민족적 숙원인 조국광복의 성업은 이룩되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역사적 쾌사가 아니었으랴. 그러나 이 고장은 38선 이북이라는 숙명적 조건으로 쏘련군의 진주를 보계되었으니 그들은 세계적화의 야욕을 품고 해방군이란 미명 아래 갖은 약탈과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이에 편승한 북한공산당들은 악랄한 수단방법으로 조국의 성지와 동족까지도 쏘련의 제물로 희생시켜 일제 이상의 절망과 암흑의 강산으로 재현시켰던 것이다. 굴욕은 죽음보다도 참기 어렵고 자유는 생명보다도 귀중한 것이어서 이에 항거한 반공애국지사들의 봉화는 마침내 뜨거운 불길로 화하였던 것이다. 이들 반공투사들은 막부삼상회의에서 탁치가 의결되자 결사적으로 반탁운동의 선구가 되었으며 북한의 소위 흑백함○보이코트 및 그 방해반공삐라 살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선거의 적극지지와 UN한국위원단에 보내는 호소문 전달 및 남한 우익 정계와 부단한 연락 등으로 반공투쟁의 횃불을 높이 밝혔던 것이니 이 어찌 애국애족의 귀감이 아니리오 오호라! 하늘도 무심토다. 그들의 자유와 정의의 항거는 6.25 동란과 때를 같이하여 학살이란 가혹한 이름 아래 불귀의 고혼이 되었도다. 1954년 11월 이 고장이 대한의 행정권하에 수복되어 님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자유천지의 낙토가 된 지 어언 13년 이제 세인의 망각 속에 무심하사라. 지려는 그들의 위업을 더듬어 후세에 이 숭고한 넋을 이어받들고저 전화의 상흔이 가신 반공보루의 최전선지구인 여기 양지 바른 와우산 기슭에 애국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이 비를 세워 영령의 명복을 빈다. 실로 이곳은 자유와 정의의 선봉이요. 민족의 갈 길을 밝혔던 반공애국지사들의 넋이 고이 잠든 성지이니 누구나 여기 오는 자 옷깃을 여미라. 그리고 승공통일만이 우리의 살 길임을 다시금 깨닫고 새롭게 또 맹세하자 「부기」 이곳에 기재된 63명외에도 자료 수집 불충분으로 수록 못함을 못내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며 또한 이분들과 같이 싸우다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은 많은 인사가 역사의 증인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아울러 첨기한다. 이 비를 세우는데 있어 명명휘호와 건립기금을 하사하여 주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비롯하여 물심양면으로 협찬하여 주신 각계인사 그리고 자료조사 수집 및 모금운동에 동분서주하신 여러분께 삼가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1966년 8월 일 반공의거순국비 건립위원회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