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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일가의 항일정신 지조있는 선비였던 정율성의 아버지 정해업은 국권이 일제로 넘어가자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3.1운동에 가담했던 큰형 효룡은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비밀공작을 수행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1934년 옥사한다. 국민혁명군 제24군의 참모직책을 맡고 있던 둘째 형 인제도 무한전투에서 전사했다. 셋째 형 의은 또한 조선의용단 군정학원에서 학생 모집책임자로 활동했다. 정율성은 항일구국운동이 한창이던 1935년, 남경에서 오월문예사(五月文藝社)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한편, 상해에서 김성숙·박건웅 등이 건립한 조선민족해방동맹(朝鮮民族解放同盟)에 가담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후 남경을 떠나 1937년 10월 중국공산당의 본부가 있는 연안(延安)에 도착하였다. 음악을 작곡하는 한편 1941년 7월부터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섬감녕분회(華北朝鮮靑年聯合會陝甘寧分會),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華北朝鮮革命靑年學校) 등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4월 다시 연안으로 돌아온 뒤 해방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