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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해는 전남 광주(光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당시 21세의 나이로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일곡리(日谷里)에서 아우인 이창호(李昌鎬)등과 함께 수백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광주시내로 진입하면서 독립만세시위에 적극 참가하다가 일경에게 피체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형을 받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1919년 8월 13일 기각되어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5월부터 1922년 9월에 이르는 동안은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특파원인 한준호(韓俊鎬)·박문용(朴文鎔)·신대선(辛大善) 등에게 권총을 가지고 군자금 모집에 관한 취지문을 발송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피체되어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궐석(闕席)재판으로 징역 7년형을 받았고, 그후 1922년 9월 1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되어 1924년 12월 31일까지 옥고를치르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이윤해 선생의 부친이신 이주상지사와 동생 이창호지사도 애국지사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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