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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약사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오직 독립운동에 몸 바친 우리 고향이 배출한 영웅이고 선각자이신 구국의 항일독립공훈자의 약사를 여기 남깁니다. 김용실(金容實) 1928.6.3. ~ 2002.2.19. 본적 양보 감당리 84 1943. 진주공립학교 재학 중 광명회를 조직하시였다. 1944.9월 학생들과 같이 진해비행장 건설공사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독립사상을 전파하다 동년 9월 23일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부산지검에 이송된 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시었다. ※ 2010년 대통령표창 추서되시었다. 김홍권(金弘權) 1892.1.25. ~ 1937.1.8. 본적 양보 운암리 115 1909.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국내외로 활동하시었으며 1919. 상해임시정부 재무위원(현 재무부장관)으로 피임되었으며 동년 4월 23일 24일에 개최된 임시의정원 제2차 회의에 의정원의원(현 국회의원)으로 피선되었으며 제4차 5월 6일 회의에서는 경상도 구급의연금위원으로 선임되어 영남권 독립운동 자금책으로 활동하시였다.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60년 대통령표창 추서되시었다. 박내홍(朴來洪) 1897.10.11 ~ 1937.6.28. 본적 양보 운암리 603 1919.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가 설립되자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 발행의 공채증권으로 모금 중, 1920.11. 기원필에게 1천원권 공채 1장과 1백원권 공채 2자을 우송과정에 일경에 발각되어 피체되시었다. 1921.6.10.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루시었고 1935.7.11. 경성지방법원 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루시었다. ※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