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page


130page

김대지(金大池) 1891.10.7. ~ 1943.10.26. 독립장(1980) 밀양시 내이동 847 이곳은 일봉(一峰) 김대지 선생의 생가터이다. 선생은 한학에 전념하다 을강 전홍표 선생이 동화학교의 교장을 역임할 당시 수학한 후 동화중학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1913년 황상규, 윤치형 등과 함께 일합사를 조직하여 4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중국에 망명하였다. 이후 회당 손일민과 백민 황상규를 만나 의열단 조직을 준비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정에 참여하여 제헌의원으로 활동하고 임시정부 내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의열단이 조직된 후 이종암 등 의열단원에게 폭탄제조 기술을 배우게 하고 1920년 상해에 있는 자신의 집을 빌려주어 연락소로 활용하고 폭탄을 제조할 장소로 제공하였다. 그 결과 의열단 제1차 국내기관총공격을 위해 이병철이 김병환의 집으로 직접 운송한 폭탄이 만들어졌다. 선생은 임시정부의 외교노선보다 무장투쟁에 뜻을 두고 [대조선국민군]을 편성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임시정부의 비난을 받자 발해 옛 영토인 영고탑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의열단의 자문 역할은 물론 1923년의 남부선 파괴 계획에 직접 참여하였고, 나석주 의거에도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었다. 가난하여 부인과 자식 둘을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보낸 선생은 독립운동 내내 계파나 주의에 연연하지 않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일제에 저항하였고, 무장투쟁과 혁명을 통한 완전한 자주독립노선을 표방하여 후학과 독립운동가들의 귀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