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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毓英齋)는 조선 선조 때 장훈(張訓) 등 연기군 동면 송용리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세운 문중서당이다. 육영재는 육영재(毓英齋)·송동숙(松洞塾)·육영의숙(毓英義塾) 등으로 불렸으며, 1921년 기성학교(期成學校)로 변경하여 초등학교 과정을 교육하였다. 육영재는 1925년 연동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면서 폐교될 때까지 한문·국사·지리 등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1910년대부터 육영재를 이끈 장성휘(張星輝)의 영향이 컸다. 장성휘는 평양의 대성학교(大成學校)에서 수학하던 중 1912년 대성학교가 폐교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육영재를 이끌었다. 육영재에서 사용했던 국사교재는 대성학교에서 사용했던 『대조선사(大朝鮮史)』였으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육영재에서 민족교육을 받은 장기민(張基民)·장홍진(張弘鎭) 등은 연기지역에서 3·1운동을 전개하였다. 출처 : 독립기념관 국내항일운동사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