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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학은 일제의 민적조사와 납세정책에 저항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15년 3월 12일 충남 연기(燕岐) 조치원(鳥致院) 헌병분견소 소속 헌병 야나기사와 도지로[柳澤藤次郞]가 민적정리를 위해 동소에 비치된 민적부(民籍簿)를 가지고 민적조사를 시행하자,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한 장재학은 ‘본인은 일본신민(日本臣民)이 아닌데 일본관헌이 조선시대에 등록된 자신의 민적부를 소지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민적부 중에서 본인에 관계된 일부분을 찢어서 소각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5년 5월 5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형법 제258조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6년 4월 출옥 후 일제 식민지지배정책을 전면 부정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제의 납세정책에도 반대하였다. 일제가 그의 집안 재산을 강제 압류 집행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했으나, 그가 굴복하지 않자 1917년 1월 23일 그와 아우 장재규, 장남 장화진을 전남 고흥의 거금도로 유배를 보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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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면 예양리 121-2 예양1리 마을회관 입구 경암 장재학 선생 의열비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