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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의(義)를 밝힐지언정 그 리(利)를 도모하지 말며 그 도(道)를 밝힐지언정 그 공(功)을 계고하지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국운이 쇠퇴하여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강탈 당하고 한일합병으로 온 나라는 일제의 발아래에 짓밟히고 온 밳겅들은 질곡애 묵인 채 나아갈 길을 잃고 허더기던 그 판탕했던 어둠의 세월에 조국광복의 대의앞에 사생취의의 길을 태하여 광복단 모집에 헌신하셨던 한 애국지사 어른의 꽃다운 행적이 있으니 그 대강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공의 휘는 해용이요 자는 무오이며 본관은 순흥이니 삼한의 거족이다. 조 휘 처연은 은사로 효성이 지극하셨고 고 휘 시규 자 응서는 단사로 효우근천하시었고 비는 진양정씨 휘 기일의 녀로 현숙하시었다. 공은 고종 갑술2월 7일에 3남 3녀중 차남으로 경북 성주군 벽진면에서 태어나시었다.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달랐고 공검근면하여 향리 원로들의 아낌없는 기대와 촉망을 받았느나 장년에 이르자 망국의 한을 품은 나머지 가솔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간도로 이주하여 절치부심하는 참담한 생활을 꾸려 가던 중 광복단 참리부장인 조병준을 만나 조선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각오 끝에 의기투합하여 그의 인도로 동단 사령관 조먕선을 만나 장차 조선으로 돌아가 국권회복을 위해 광복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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