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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해제 (1) 공주(公州) 공주에서의 3·1운동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43 3월 12일 공주읍 시장의 장날에 독립만세를 부르려는 시도가 있었다. 공주 부근에서 천도교신자 중심으로 경찰서를 공격 하려고 하였다. 3월 17일 오후 5시 김희봉(金喜鳳)이 공주 시장에 나가 군중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1,000여 명이 함께 대한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24일 오후 9시경 영명학교(永明學校)에서 목사 현석칠(玄錫七), 안창호(安昌鎬),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현언동(玄彦東), 영명여학교 교사 이규상(李圭尙), 동경 유학생 김사현(金士賢)·안성호(安聖鎬)·오익표(吳翼杓) 등 9명이 회합하여 현석칠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4월 1일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25일 김관회는 김수철을 만나 영명학교 학생들을 참여시키는데 동의를 얻고, 「독립선언서」 1,000매 제작을 부탁하였다. 김수철은 영명학교 학생 유준석(柳俊錫)·윤봉균(尹鳳均) 등에게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고, 29일에 이규남(李圭南)을 만나 태극기 제작을 부탁하였으며, 30일에는 자택에서 양재순(梁載淳)·유준석 등을 만나 김관회의 뜻을 전하여 동의를 얻었다. 31일 오후 3시경 노명우 등은 학교 기숙사에서 윤봉균이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로 약 1,000매를 인쇄하였다. 이규남은 자택에서 태극기 4개를 만들어 김수철에게 3개, 이규상에게 1개를 전달하였다. 현석칠은 전체적인 지휘를 하고, 김관회는 영명학교와 공주공립보통학교의 남학생들을 담당하며 「독립선언서」를 인쇄 반포하고, 현언동은 공주농업학교 학생들을 담당하고, 이규상은 영명여학교와 공주공립보통여학교를 담당하여 학생들의 만세운동 참여를 유도하기도 하였다. 4월 1일 오후 2시경 김수철·노명우·윤봉균 등은 이규남이 제작한 태극기를 하나씩 가지고, 강윤·노명우·류준석·양재순은 「독립선언서」를 100매씩 가지고 공주 시장으로 가서 장에 모여든 군중 속에서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는 한편,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143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1979, 107~108쪽 ;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1154~1155쪽 ; 대한민국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1), 1979, 35·52쪽 ; 김진호·박이준·박철규, 『국내3·1운동Ⅱ-남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연구소, 2009, 13~18쪽 ; 김진호, 「충남지방 3·1운동 연구」, 충남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2, 382~384쪽 ; 박철희, 『(충절의 고장) 공주지역 항일독립운동사 : 공주영명학교중심』, 고구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