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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이향화(李鄕和) 통학생이 조숙경을 찾아와 충교예배당 지하실에 감추었던 「독립선언서」를 건네주었다. 권애라·김정숙·류정희(柳貞姬)·이영지·이향화·조숙경·조화벽 등은 구본관 4층 기도실에서 어두운 가운데 3월 3일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기숙생 포섭은 나누어서 맡았다. 호수돈여학교 대표는 미리흠(美理欽)여학교에 알려 연명선서를 만들었다. 호수돈여학교에서 김신열(金信烈)·류정희·이경자·이풍근(李風根)·이호진 (李好進)·조숙경(趙淑景), 미리흠여학교에서 이신애(李信愛)·이영(李英), 부속학교에서 권명범(權明範), 학생 김정임(金貞任)·류순덕(柳順德) 등 70여 명이 서명날인하였다. 경계가 심하여 기숙생들이 밖을 왕래할 수 없으므로 4층의 커튼을 뜯어내어 태극기를 만들고 기숙사 문을 잠가 외부와의 접촉을 금하면서 거사 시간을 기다렸다. 3월 3일 호수돈여학교와 한영서원(韓英書院)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벌였다. 3월 3일 통학생 이향화는 약속한 시간에 학교 담 밖으로 와서 숨어 있었고, 총지휘자 조숙경은 다른 두 대장들에게 암호하여 학생들을 이끌고 나올 것을 지시하였다. 중부는 이향화, 동부는 조숙경, 서부는 권문범(權門範)의 세 대(隊)로 학생들을 나누어 책임을 맡았다. 세 대장은 그 날의 연설을 책임맡았고, 세 대장과 비밀회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학교에 책임이 없도록 하기 위해 퇴학원서를 써서 한 자리에 묶어놓았다. 그리고 기숙사 담을 넘어 달려나가 모여든 군중을 향해 연설하였다. 지게꾼들도 작대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고 순사까지도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대열에 합류하였다. 91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3일 아침 기도회를 끝내고 약속한 대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찬송가를 부르면서 헌병경찰서 앞으로 시위하였다. 전도강연인 줄 알았는데 민족자결주의의 연설을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일제경찰은 많은 여학생들을 경찰서 뒤뜰 운동장으로 연행하였다. 약 1천 명의 군중이 경찰서로 밀려들었고, 학교장 와그너(wagner)가 와서 학생들을 달랬다. 그러나 학생들은 각오하고 시작한 것이며 모두 학교에 퇴학계를 제출하였으니 교장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와그너 교장은 일본인 군수에게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니 자기를 구속하고 여학생들을 돌려 보내달라고 간청하였다. 일본인 군수는 단 위에 올라 여학생들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다며 여학생들을 위해 만세삼창을 하고, 91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 『호수돈 백년사』, 홍익전자출판, 1999, 99쪽.